최근에 대한민국에 운동 열풍이 불면서 운동보조제로 각광받고 있는 아르기닌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에 따라 각종 아르기닌 제제와 보충제가 출시되었고 각종 효능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아르기닌에 대한 각종 루머가 생성되었는데, 예를 들어 숙취해소에 좋다, 비아그라처럼 발기를 촉진한다, 탈모를 유발한다 ㄷㄷㄷ 등등의 이야기가 퍼져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런 여러가지 세간속설의 타당성에 대해 알아본다.
1. 아르기닌에 대해
아르기닌(Arginine)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20가지 아미노산 중 하나이다. 아르기닌은 체내에서 생성되기는 하지만 그 양이 매우 적어서 외부 섭취가 필요하기 때문에 준필수 아미노산으로 분류한다. 순수한 아르기닌은 상당히 강한 염기성을 띠기 때문에 피부에 닿으면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1) 작용
아르기닌은 체내 일산화질소(NO)의 생성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 산화질소는 구아닐레이트 사이클레이즈(guanilate cyclase)라는 효소를 활성화시키며 이로 인해 해면체 내의 GMP가 cGMP로 변화된다. 이 cGMP는 체내에서 평활근을 확장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혈관도 평활근으로 이루어진 근육조직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혈관이 확장된다. 이처럼 아르기닌은 혈관을 확장시켜서 혈액순환을 도와주기 때문에 (운동 전에) 운동능력 향상을 도모하고 (운동 후에) 피로 회
복을 촉진시킬 목적으로 많이 섭취한다. 또 고혈압 환자들이 치료 보조제로 활용한다.
또 아르기닌은 암모니아를 요소로 바꾸는 요소 회로의 주요 물질중 하나로 유해한 몸에 암모니아의 제거를 원활하게 해주는데, 자세한 것은 밑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기본적으로 혈액순환과 노폐물 제거는 건강에 필수 중의 필수인 사항이기 때문에 아르기닌은 비타민 B나 C처럼 누가 먹어도 도움이 되는 훌륭한 물질이다. 다만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및 심각한 심혈관질환을 앓고 있거나 앓았던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르기닌은 금기이다. 아르기닌은 간접적으로 메티오닌의 대사산물인 호모시스테인을 증가시키는데 이 호모시스테인은 혈관독성을 가지고 있어 심혈관질환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또 저혈압 환자들도 섣불리 섭취해서는 안된다.
(2) 섭취 방법
생체 구성물질이긴 하지만 흡수효율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다른 음식물과 같이 먹기보다는 공복에 먹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강염기성 물질이기 때문에 공복에 다량을 섭취할 경우 복통이나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흡수효율을 높이기 위해 알파-케토글루트산이나 오르니틴, 시트룰린과 같은 물질을 혼합한 보충제가 추천되는데, 이런 혼합보충제는 가격이 비싸다는 문제가 있다.
또 아르기닌은 같은 아미노산인 라이신(Lysine)과 흡수경쟁을 벌인다. 즉 한쪽을 많이 흡수하면 다른 한쪽은 흡수에 제한을 받는다. 따라서 아르기닌을 장기간 다량으로 복용하면 라이신 부족으로 인한 구내염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아르기닌을 일종의 먹이로 활용하기 때문에 헤르페스 구내염이 자주 발생할 우려가 있다. 그러니 아르기닌이 몸에 좋다고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먹지는 않도록 하자.
재미없는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우리들의 관심사에 대해 본격 이야기를 해보자
2. 아르기닌이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아르기닌이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숙취해소를 돕는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사이트는 (최소한 내가 아는 한은) 없는 실정이다. 숙취해소는 기본적으로 간에서 행해지는 일이기 때문에 아르기닌이 숙취해소를 하려면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숙취는 알코올의 분해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에 의해 발생하며 숙취해소는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아세트산으로 바꿔주는 아세트알데하이드 탈수효소에 의해 일어난다. 간에서 이 탈수소 효소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제대로 작동해주는지 여부가 바로 숙취해소의 관건이 된다. 술을 먹었을때 사람마다 숙취의 정도가 다른것은 바로 이 탈수소효소의 양과 효율이 유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복잡한 그림을 이해할 필요는 없고 다만 대사과정에서 딱히 아르기닌이 개입할만한 부분이 없다는 것이 포인트이다. 즉 아르기닌은 직접적으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하거나 탈수소효소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아르기닌이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걸까?
아르기닌은 간에서 수행되는 다른 대사, 즉 몸에 해로운 암모니아를 무해한 요소로 바꿔주는 요소회로 에서 중요한 물질로 작용한다. 그러니까 아르기닌이 직접 숙취해소를 돕는 것은 아니고, 다만 간의 여러 업무 중에 암모니아 대사에 대한 부담을 줄여서 숙취해소에 좀더 많은 힘을 쏟을 수 있도록 간접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다. 아르기닌이 단골로 간기능 보조제에 포함되는 것은 바로 이런 역할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아르기닌이 숙취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은 맞다. 다만 위의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숙취해소에 도움이 되려면 아르기닌만 단독으로 먹는 것보다는 요소회로에 작용하는 다른 물질, 즉 오르니틴과 시트룰린이 같이 포함된 복합제제를 먹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복합제제로 먹으면 흡수 효율이 높아지는 장점도 있다.
3. 아르기닌이 발기를 촉진시킨다?
아르기닌을 판매하는 제약 회사나 건강식품 회사들이 앞다투어 아르기닌이 발기 촉진에 효과가 있다고 광고를 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그럴듯한데, 발기 역시 생리학적으로 보면 산화질소에 의해 음경해면체동맥의 확장이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아르기닌이 다른 발기부전 치료제인 실데나필(비아그라)과 같은 국소성이 없다는 것이다. 실데나필이나 타다라필(시알리스)같은 PDE-5 억제제는 PDE-5 효소가 음경을 비롯한 몇몇 부위에 제한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해당 부위에서만 효과를 나타낸다. 반면 산화질소는 특별히 음경의 해면체동맥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혈관 곳곳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전신적인 작용범위를 갖는다. 따라서 체감적으로 음경해면체동맥의 확장을 일으키려면 엄청나게 많은 양을 먹어야 된다. 그런데 아르기닌은 애초에 몸에 흡수가 잘 안되는 물질이기 때문에 많이 먹어봐야 흡수는 되지 않고 복통과 설사, 알러지같은 부작용만 심해질 것이다.
다만 아르기닌이 만성적인 발기부전에 시달리는 환자를 치료하는데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는 논문이 있다. 관련논문
한국 연구진에 의해 작성된 이 논문에서는 총 10편의 논문을 메타분석한 결과 540명의 경증 및 중(中)증 발기부전 환자들에게 아르기닌을 1500~5000mg을 투여한 경우 발기능력과 관련된 수치가 상당부분 개선됐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르기닌이 비아그라와 같은 발기부전약을 대체할 수는 없다. 아르기닌으로 발기부전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는 경우는 아미노산 부족이나 산화질소 발생 부족으로 인한 경증 발기부전 정도이다. 남성호르몬 저하, 기저질환, 약물 부작용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발기부전에서는 아르기닌이 효과를 주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아르기닌은 발기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 약간의 도움을 줄 수는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발기 부전을 치료할 목적으로 아르기닌을 먹는 일은 없도록 하자.
4. 아르기닌이 탈모를 유발한다?
아르기닌이 탈모를 유발한다는 뜬금없는 이야기가 탈모인 커뮤니티에서 퍼진 적이 있었다. 아르기닌이 탈모의 원인물질인 DHT(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좀더 자세하게는 테스토스테론을 DHT로 바꿔주는 5-알파환원효소를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나처럼 탈모를 겁내는 사람들은 아르기닌을 못먹게 됐는데;;;;; ㅠㅠ
이런 이야기가 퍼져 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관련 연구나 자료를 검색했지만 아르기닌이 탈모를 유발한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아르기닌이 성장인자인 IGF-1을 생성한다는 논문이 몇 개 있는데 탈모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의사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서 아르기닌이 탈모와 관련있다는 어떠한 의학적 근거나 연구결과도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아르기닌이 탈모를 유발한다는 것은 근거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아르기닌은 모발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구성분이며 혈관확장을 일으키기 때문에(대표적인 탈모약인 미녹시딜도 기본적으로 혈관확장제이다) 탈모 치료에 도움이 되면 됐지 탈모를 유발시킬 일은 없다. 탈모인들을 두 번 울리는 ㅠㅠ 이런 낭설이 다시 생겨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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